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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이야기/정리하기

성냥버리기

by jisungStory 202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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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성냥 버리기

 제 책상은 언제나 이런저런 것들로 어지럽습니다. 대부분 제가 생게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정리를 잘하지 않다 보니 가끔 기억도 나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있기도 합니다. 책상을 정리하면서 기억나지 않는 물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성냥’이었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에는 석유난로 같은 것이 없어 성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끔 분위기를 내기 위해 화로에 고체연료를 넣고 고기를 구워 먹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점화용 가스라이터를 사용합니다. 성냥은 직접 사용해 본 지 오래된 유물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책상 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직접 사지는 않았겠지만 어디에선가 받아왔기에 제 책상 위에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물건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생경한 경험입니다. 마치 미지의 다른 차원의 나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경험입니다. 지금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단서를 찾아 보았습니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성냥을 뜯고 이리저리 훑어보았습니다. 성냥 옆에 조그맣게 적힌 영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sosim book store’라고 적힌 작은 영어 문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성냥은 제주도에 몇 해 전 여행 갔을 때 들렀던 ‘소심한 책방’에서 사은품으로 나누어 받은 것이었습니다. 여행 이후 오랫동안 제 책상 위에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 왔을때 바로 정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여행에 대한 여운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주도’는 여행을 갈 때마다 저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그곳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같은 나라임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그러서 더욱 ‘제주도’와 관련된 것들을 함부로 버리거나 치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주도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십년이 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떠난 것이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길게 잡아도 7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외국보다는 제주도 여행을 더 즐겨 다녔습니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제주도를 알게 된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지만 아끼는 마음만큼은 컸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제주’를 찾은 것은 이년전입니다.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름 계획을 하고 떠났지만 힘들고 지치는 여행이었습니다. 혼자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아닌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여행은 행복하기보다 노동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찬 눈으로 제주를 보아서 그런지 그 여행에서는 제주의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세상의 정겨운 마을 같았던 곳은 점점 서울의 한복판 처럼 느껴졌습니다. 세련된 식당과 카페들은 점점 제주만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제주 분들의 마음도 예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은 제가 힘든 여행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보다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많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저는 제주도를 향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외국을 갈 수도 있지만 다시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그 만큼 제주를 살아하는 마음이 커서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가 사랑했던 제주의 모습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제주가 변해서가 아닌 제가 그 여행에서 힘들어서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이 사는 세상도 함께 변합니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제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을 저의 기억속 추억과 다르다고 해서 아쉬워하는 것은 저의 욕심일 겁니다. 

 성냥한갑을 버리기 위해 많은 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이 물건을 버려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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