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 첫 그림

보리수

보 리 수 

첫 그 림 

 

 저의 오래된 새해 목표는 ‘그림 배우기’입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그걸 꾸준히 실천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항상 무언가 인생의 걸림돌이 발생할 때마다 그 꿈은 작고 소박한 것이 되어 뒤로 미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맞이하게 된 ‘육아 휴직’이라는 기회는 힘들지만 노력하면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한들 많은 시간을 투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아와 병행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전에 생계를 이끌어갈 무언가를 만들어 놔야 한다는 숙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짐을 짊어지고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처음 시도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잘 정돈된 많은 수업들이 있었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을 골라 수료했지만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림 실력이 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 실력은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강제해서라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의 전통적인 사교육 시스템을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괜찮은 미술학원이 있었습니다. 원장님과 면담을 통해 주 3일 강습을 받기로 하고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것 같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 도착 했습니다. 그리고 첫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묘 연습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선생님께서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다양한 식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번 카피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차여서 기분 좋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동안 연필을 활용하여 흑백의 세계에만  갇혀있던 저의 그림이 색연필을 활용하여 채색을 하자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와중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사물을 똑같이 그려낸다는 것을 넘어서 그 그림안에 이야기를 생각하곤 합니다. 많은 그림들이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너머에 있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상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피엔스는 그 의미를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예술은 어쩌면 힘든 현실을 이겨내는 사피엔스 만의 도피처 일수도 있습니다. 

 수 많은 예제 그림들 중에 제가 고른 것은 ‘보리수’였습니다. 제 부모님의 집에는 오래된 ‘보리수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나무에는 가을만 되면 열매가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열려 그 열매를 따다가 청을 담그거나 술을 담그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던 나무가 ‘보리수’ 였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저 달콤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였던 그 나무가 다시 보니 달라보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나무를 그저 길 위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보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나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리수나무를 그리면서 또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사피엔스는 의미 중독자가 아닌가 합니다. 

 첫 그림을 완성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그림을 통해 더 많은 그림의 세계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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