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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

by jisungStory 201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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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저는 이 책을 읽기를 매우 망설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대해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안함... 죄송함이었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뵌 것은 임관식에서 였습니다. 저는 학군장교로 임관하여 전역했습니다.  학군 연병장에 임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오셨었습니다. 몇 백 미터 밖에서 바라본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멀어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때의 긴장된 분위기만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는 않지만 그날의 추운 겨울 진중하게 울려 퍼지는 울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이 흘렀고 대통령은 바뀌었고 저는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가장 큰 숙제는 취업이었습니다. 그 숙제가 너무나 커서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취업이라는 관문을 넘어서고서도 한참 동안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제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겪어 내기만 해도 숨 가쁜 직장인의 삶 속에서 지나간 정치인의 이름은 그저 오래된 기억 속의 한 장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십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결혼을 했고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이 한국이라는 세상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불안하고 불합리한 이 나라에서 이 아이가 여자의 몸으로 겪어야 할 현실은 녹녹지 않습니다. 그나마 잘 사는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다면 걱정이라도 덜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입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때 노무현 대통령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겨우 깨달은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살아오는 동안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은 몇 번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좀 가난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실감각이 좀 떨어지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취업 이후의 삶은 달랐습니다. 직접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나가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런 노력 없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것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나라의 독립도 그러 했고, 민주주의도 그러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는지 지금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 값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독립된 조국의 민주주의 환경에서 일하고 자식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현장의 중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 계셨습니다. 영화 '변호인'으로도 유명한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 활약하면서 독재의 탄압속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분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부당한 사건이 그 시절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 억울한 현장들을 뛰어다니며 그 사람들을 변호하셨다고 합니다. 서슬 퍼랬던 그 시절의 군부 독재 앞에서 맨몸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두려움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이 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깊게 하게 됩니다.

 저는 정치인 노무현 보다는 사람 노무현에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여러 선택지 중에 항상 어려운 선택 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하여 변호사로 일하면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안정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첫 법조인으로 시작한 곳이 대전 지방 법원 판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도 판사라면 한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그 시절의 판사라고 하면 그 무게감을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 년 만에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후 인권변호사기되기까지의 선택은 저 같은 세속적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신의 성향 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시대가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익숙해져 있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오늘의 하루가 내일도 똑같이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합니다.  큰 강의 물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감당하기 힘든 급류가 몰아치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우리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 시대에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뿐입니다. 시대가 부른다고 해도 그 무게를 지탱할 힘을 지니지 못했다면 암초에 부딪혀 부서져 버릴 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닥에서 시작해서 권력의 정점까지 도착 했습니다. 시대의 부름에 답했지만 거센 물결을 완전히 바꾸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마저도 그 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도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지는 못했지만 흐름을 바꾸어내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의 실패는 노무현의 것일 뿐, 다른 누구의 실패도 아니다. 진보의 실패는 더더욱 아니다. 내 인생의 좌절도 노무현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진보의 모든 것을 망쳤다고 덮어 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옳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명이다. p37 9번째 줄 부터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신의 성공 이야기보다 실패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실려 있습니다. 당신을 스스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하시고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실패 해던 일들 잘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셨습니다. 개인으로서 소소하게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도 저의 실패를 기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괴로운 기억을 불러낼 뿐만 아니라 객관성을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호한 자세로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 근거와 결과를 들어 나열해 놓으셨습니다. 자신이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다음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스스로는 실패 하셨다고 적으셨지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아마도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으셨던 만큼 아마도 사람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 많은 곳에서 노무현의 사람들은 그분이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어려운 난관이 곳곳이 도사리고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 곤란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장애물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저는 그 분의 자서전을 읽고, 여러 다른 분들의 그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분의 삶을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그 삶의 밀도는 제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일 년은 저의 십 년과도 같은 밀도의 삶이 었을 겁니다. 매일 같이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지도 모를 선택을 하면서 살아온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분의 삶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이라기보다는 지난 한국의 근현대사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책에서 만날 수 있는 사건들 중심에서 역할을 해오신 분으로서 권력의 정점까지 도착하셨지만 스스로는 실패했다고 규정하시는 분 그런 분이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합니다. 

 일전에 강원국 작가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였습니다. 글은 결국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오는 것이고, 밀도 있는 인생을 산 사람 만이 밀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시대에 가장 밀도 있게 사신 분 중에 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내내 가슴속에 무겁게 내려 앉은 책  '운명이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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