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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가장 도시적인 삶 - 황두진 건축가의 재미있는 건축읽기

by jisungStory 201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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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도시 적인 삶

무지개떡 건축 탐사 프로젝트

 저는 도시화된 한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비록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지방의 중소도시였고 80년대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도 융성했던 곳이었습니다. 9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저에게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은 당연한 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매일 매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여기 저기 논밭이던 곳이 콘크리트로 덮여 가는 것이 익숙했습니다. 

 성장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저지만 아파트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주거 형태 였습니다. 어린시절 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주택에서 살았고 성장해서도 한동안 부모님과 함께 주택에서 지냈습니다. 주택이 주는 안락함과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주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혼집을 마련하기에 주택은 너무 비쌌고 제가 가진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오래된 아파트 정도 였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십년이 다된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고 그 집에서 이년을 살았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건축이 사람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지개떡 건축은 흔히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불리는 건축양식입니다. 일층이나 저층에는 상가나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그 위로 주거건물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요 마치 최근의 것인것 같지만 이 책을 통해서 만난 무지개떡 건축의 역사는 꽤나 깊습니다. 

 해방 전후 한옥이 주된 주거양식인 시절의 주상복합은 일층에 점포를 열고 이층에 주인이 사는 이층 형태의 주거가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옥의 대부분이 소실 되었고 저층이라는 밀도의 한계에 부딛혀 금방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고 다른 나라들 처럼 단절 없이 발전해 왔다면 우리가 보는 거리의 대부분은 한옥이 었을 것이고 그 한옥을 이층이나 삼층으로 개축한 형태의 상가 거리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거리를 거늬는 것은 상상만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최근 전주의 한옥마을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몰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문화적 감수성 안에 한옥에 대한 향수가 녹아들어 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황두진 건축가님의 시선을 따라 다니며 건물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나다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나 무지개떡 건물들을 보면 첫 감상이 대부분 '오래됐다.', '좀 있다 재개발 되겠네.' 정도 였는데 그 건물의 배치를 통해 규칙성을 읽어 내고 그 디자인적인 부분을 통해 이 건물을 설계할 당시 건축가가 의도 했던 것들을 집어 내는 것을 통해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도 멋진 일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건축읽기'를 따라 가다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낙원상가'에 얽힌 이야기 였습니다. 원래 '낙원시장'에 도로가 놓이게 되자 상인들이 조합을 만들었고 그 조합을 기반으로 만들어 진것이 '낙원상가'라고 합니다. 저는 그냥 악기 상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곳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사람들이 드나 드는 상가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주거 공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이 상당히 잘 지어져서 아직까지도 제 역할을 다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도 낙원상가를 다시금 보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기존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남아 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오히려 뼈아프게 배워야할 모범이다.


가장 도시적인 삶 p.309


 아직도 흔히 들리는 재개발 지역의 안타까운 사연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많은 나라에서 겪는 부작용이자 성장의 흉터입니다. 낙원상가의 이야기는 그런 흉터에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이야기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낙원상가 이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두진 건축가 께서는 이 글의 초입부에 낙원상가에 대한 총평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총평: 복합 건축으로는 여전히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으나 깊이 있는 이론적 배경과 주변지역에 대한 배려 등이 결여된 상태에서 지어진 것은 아쉽다. 

가장 도시적인 삶 p.303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주변과 조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떨어진 외딴섬이 되어버립니다. 자연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많이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제주도와 같은 육지와는 다른 식생을가진 숲에서는 소나무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척박한 제주도의 땅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것이 힘들기 때문인데요. 제주도의 소나무는 자생이라기 보다 육지에서 가져온것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제주도에 서있는 소나무들이 어색해 보이기만 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낙원상가가 지어질 당시의 서울에는 그런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이 었다고 합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지어졌다면 훨씬 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도시 이곳 저곳을 탐사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전 읽은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에서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제주도를 탐험했다면 이번에 읽은 '가장 도시적인 삶'에서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도시를 탐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탐험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운것 같아서 우선 너무나 기뻤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부족한 실력으로 '건축읽기'를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삶을 중심에 두고 건축을 바라 보는 시각을 선물해준 '가장 도시적인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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