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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갈리아전기

by jisungStory 201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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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기 / 내전기

  '라틴어 수업'을 듣고 나서 로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습니다. 오래전에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로마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된 책을 몇권 찾아 본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매력적인 책은 아마 이 갈리아 전기 가 될 것 같습니다.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라틴어 수업'에서 올바른 발음은 '캐사르'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그냥 익숙한 이름인 카이사르를 사용하겠습니다.)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시저'로 알려져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 정치체제였던 로마를 제정의 형태로 개편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 외에도 업적이 많습니다.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 정복전쟁을 시작하여 마무리한 업적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인정받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 극적인 순간을 스스로 정리 한 것이 이 갈리아 전기 입니다. 군의 최고 지휘관이 직접 전쟁의 순간을 기술한 작품은 현대에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저작이며 읽어 보면 탁월한 그의 문장력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차분함과 통찰력이 녹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작가 스스로를 삼인칭으로 지칭합니다. 
 카이사르는 헬베티 족이 '속주' 통과를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급히 로마를 떠나 초강행군으로 외갈리아를 향하여, 곧 겐바 근처에 이르렀다.

갈리아 전기 p. 14

 평소 우리는 일기를 쓸때 '나는 서울역을 통해서 경복궁으로 갔다' 처럼 일인칭 시점을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특이하게도 자신을 삼인칭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내고 있고 이 책에서도 마지막에 이 부분이 눈여겨 볼만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카이사르를 이해하는데 가장 주요한 관점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주관과 객관의 차이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자아라는 틀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행동과 생각을 평가할때 정당화하기 쉽습니다. 이런 정당화의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자신의 행동은 무조건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식의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특히 매우 빠른시간안에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군의 총 책임자의 경우 그런 하나의 오류가 수많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카이사르는 자신을 삼인칭으로 두고 글을 씀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제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 보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사들은 갈리 인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분개하여, 카이사르에게 전투 신호를 재촉했다. 이에 대해 카이사르는, 승리에는 심각한 피해와 다수의 전사자를 수반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자신을 위해 위험도 불사하려는 마음은 알지만 부하의 생명을 경시하는 총사령관은 비난을 면할 수 없다는 말로 그들을 달랬다. 그리고 그날은 진영으로 병사를 철수시키고, 아바리쿰의 포위 공격에 필요한 다른 일에 착수 했다. 

갈리아 전기 p.169


 카이사르의 냉정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갈리아인들이 로마군의 진영을 정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로마의 병사 (아마도 대대장 정도 되는 장교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가 뛰쳐나가려 하자 말리는 장면입니다. 이 때의 상황이 어땠는지 현장에 있어보지 않고서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전투를 벌이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카이사르의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전투를 즐기는 용장이 아닌 준비를 통해 차근 차근 전쟁을 수행하는 스타일의 장군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병력이라고는 해도 원정 전쟁에서는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 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카이사르는 전장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아는 통찰을 지니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카이사르의 통찰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갈리아전기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전장의 상황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지형, 부족의 특성, 기르는 가축까지 관련된 정보는 모조리 모아서 정리해 둔 것입니다. 당시의 정보 자산은 대부분 첩자를 통한 인적정보 였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적정보는 그 특성상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개인의 역량에 따라 정보의 편차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아마도 카이사르는 평소에 이런 작업들을 지속해서 펼쳐 왔고 책을 저술하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정제된 정보를 갖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로마 역사를 통틀어서 카이사르 만큼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제국을 통치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수 많은 위기 상황속에서도 지혜롭게 때로는 어거지로 탈출하면서 로마의 종신 독재관에 가기까지 아직도 전해지는 그의 영웅적인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갈리아 전기를 읽으며 때로는 카이사르의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실의 이야기가 소설의 이야기를 압도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갈리아 전기를 읽으며 그 당시 로마를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만나는 카이사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갈리아 전기에 잠시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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