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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토지 1권

by jisungStory 201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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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권

 

역사의 숲에서 헤메이다.


 저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리뷰를 적는 것에는 조금 망설여 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지만 리뷰를 적는 것은 그 즐거움을 정리해서 이성적으로 말해야 하기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읽은 감정들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설 리뷰를 잘 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책을 곁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서가라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책 '토지' 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작품들 하나 하나가 대한민국 소설의 역사로 추앙받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명성이 그 분의 소설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대단한 작품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경외감과 걱정이 겹칩니다. 저에게는 '토지'를 읽는 것이 새로운 도전과도 같은 일입니다. 

  ‘토지’를 덜컥 산것은 김영하 소설가의 말 한마디가 원인이 되었습니다. ‘알쓸신잡’ 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토지를 안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읽기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산 책중에 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책읽기에 대한 부담감을 한번에 날려 버리는 발언이었습니다. 저는 산책은 억지로라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이후로 책을 사서 읽지 않은 것이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기왕 산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붙었습니다. 

 이제 토지 이야기로 돌아 오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읽어 보지 못한 소설 토지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토지 1권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서희’ 와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처음 제가 놀란 것은 대부분의 대화가 경상도 사투리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배경이 서울이 아닌 하동인 만큼 사투리가 쓰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대화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각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문장의 힘을 통해 박경리 문장의 섬세함이 느껴졌습니다. 섬세함 뿐만 아니라 각 인물들에게 부여된 각각의 서사는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토지의 시대적 배경은 구한 말 청일 전쟁과 동학농민 운동의 직후입니다. 연표를 보면 1897년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의 역사를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대충 훑고 지나갑니다. 제가 아는 것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했다.’ , ‘동학농민 운동이 실패했다.’ 같은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 합니다. 이것은 멀리서 숲만 바라보는 것이 불과 합니다. 멀리서는 숲의 대충의 형태를 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무들과 산짐승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역사책의 요약된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 사건이 사회에 미쳤던 영향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 ‘토지’를 통해서 우리는 그 당대의 사람들과 간접적이나마 대화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는 그 각각의 등장인물들에게 시대의 상징을 부여하고 서사를 이어나갑다. 우리는 소설속의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 했던 사람을 만나고 그 혼돈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통해 구한말의 한반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숲에서 이리 저리 헤메이며 그때의 감성과 이야기를 옆에서 엿듣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공간이 생겨나고 그 속에서 저만의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소설이 주는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 있따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공간과 제가 상상하는 공간의 차이 그리고 그 공간들은 독자마다 다른 고유한 색깔로 구성됩니다. 그런 수많은 사상 공간의 탄생을 소설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토지'를 읽는 것이 사실 처음은 아닙니다. 중학교시절 토지 1권을 도서관에서 꺼내어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첫장에서 만난 채치수는 제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근엄하게 대하는 모습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삽십대가 지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읽은 채치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병으로 아픈 자신의 처지와 권위적인 시대에 태어나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 사람이 아무리 딸이 귀여워도 대뜸 안아주고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혹여 자신의 병이 딸에 옮을까 걱정 되는 것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조막만한 여자아이가 얼마나 귀여웠겠습니까 심지어 자기 딸인데 말이죠. 그 마음이 저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인 자신을 무서워 하는 딸을 보며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인지 하인에게  화를 내는 그 장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린시절의 저는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이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 가진 서사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그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첫발을 대딛기 시작한 저의 토지 읽기는 앞으로 저에게 어떤 감상을 안겨주게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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