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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정유정의 환상 방황

by jisungStory 2018.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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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

 정유정 작가를 처음 알게 된것은 '7년의 밤'을 통해서 였다. 평소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 나 지만 그 때의 서점에서 무언가에 홀린듯 이 소설을 집으로 모셔 왔다. 평소에 읽던 소설 보다 상당히 벽돌책 같이 두꺼웠는데 읽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한참도안 남았던 작품이었다. 그때 정유정 작가의 팬이 되었다. '7년의 밤'이후로 '28' 도 사서 읽었다. 작가 한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책을 연결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28'이후에 나온 책이 소설이 아닌 이 여행에세이 였다. 

 당연히 다음 작품이 소설일거라 예상했는데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작품을 한 써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아직 나는 감히 상상을 할 수 도 없다.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쉽게 술술 읽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작가님들은 그 한문장을 써내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런 정신적인 노동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지치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나같으면 좀 휴양의 개념으로 제주도나 발리 같은 휴양지를 선택 할 것 같은데 정유정 작가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선택 하셨다. 뭔가 비범하면서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목이었다. 

 내가 평소에 읽었던 여행글 들은 대부분 여행에서 겪은 일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여행기는 조금 구성이 달랐다. 여행의 중간 중간 작가의 삶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액자식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단순히 여행기라 이름 붙이지 않고 여행에세이라고 이름 붙인것 같다. 소설가의 역량으로 이야기도 생동감이 넘친다. 처음 읽을 때도 느꼈던 것지만 다시 읽어도 마치 내가 안나푸르나로 떠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은 현장감이 글 속에서 느껴진다.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 보면 나오는 짧은 이야기들이 가슴을 치게 만든다. 

 안나푸르나의 본격적인 난코스로 접어 들면서 작가가 던진 한마디가 나의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제 부터 혼자 가는 거야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 p.140 위에서 12번째

 그리고 작가님의 모친께서 임종하시는 순간을 짧게 다루고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 한참 이 문장을 다시 읽고 또 생각했다. 혼자 라는 단어에서 밀려오는 두려움 막막함 들이 어지럽게 마음 속에 펼쳐 졌다. 마치 안나푸르나에 아무도 없이 홀로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데 산중에 홀로 떨어진 느낌 그리고 나는 저 높은 산을 혼자 올라야 할 것 같은 그런 상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책을 덮고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혼자 라는 순간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좋아 하는 일들은 대부분 혼자 하는 일들이고 내 스스로도 내성적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덮쳐왔다. 혼자 다닌 여행도 많이 다녔었고 지금껏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저 문장에서 주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책일 다시 다 읽고 마지막에서 이 두려움의 힌트를 얻은듯 하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이인 동시에 어른인 셈이다. 

삶을 배우면서 죽음을 체득해 가는 존재.

나는 안나푸르나에서 비로서, 혹은 운좋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 p.307 

 아마 이 두려움은 내안에 남아 있는 어린아이가 내지르는 비명인듯 하다.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억누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차마 말못하고 무서워 하고 있는 아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내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아이처럼 행동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행동해 주길 바라며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나는 생존을 하기 위해 그 무언의 압박을 받아들이고 나를 수정해 나간다. 여러 책에서 소개 하는 사회화라는 길들이기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 10년차 정도 되면 이 사회화가 내면화 되어 내가 처음에 어떤 아이었는지 잊어 버리게 된다. 내가 아이였을때 좋아 했던 기억들을 잊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 하는 것으로 나를 덮어 버린다. 그리고 처음 부터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믿고 살아 간다. 하지만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지식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나의 타고난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진다면 그건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잊어버린 나의 원래 특성을 찾기 위해서는 주변의 환경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환경을 소거시키기 위해서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섞여지내는 그 곳을 떠나 혼자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비로소 내가 오롯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몇 번의 혼자 떠난 여행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 하는 지 어떤 풍경을 좋아 하는지 그리고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정유정 작가님과 다른 점이라면 안나푸르나 같은 험지가 아니라 제주도 여행이나 일본여행 같은 짧은 해외여행에서도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서 본 편린만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 안나푸르나를 선택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대단한 분인것 같다.

 여행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여행이 가진 그 고유한 매력만으로도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수만년 유목생활을 했던 인류의 DNA를 다시 꺼내들게 하는 거의 유일한 활동이 아닐까 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여름밤 시원한 히말라야의 바람을 상상하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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