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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백년전쟁 1337~1453(세번째)

by jisungStory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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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1337~1453

현명왕 샤를 1360 ~ 1380

 나는 중세라고 부르는 유럽의 역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에게는 소중한 자신들의 역사일지 모르나 철저하게 제 삼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근대사 만큼이나 잔혹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숫자로 기록된 희생자는 그 이름 하나 남지 않았고 그 역사속 모든 왕들이 그 보다더 추상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피로 얼룩진 중세시대를 읽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이라기 보다 호러물을 보는 듯한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잔혹함 속에서 지헤를 찾고자 함이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 인건지 아니면 생명의 특징인지 알 수 없으나 생명의 마지막에 몰린 인간은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 위기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환경과 배경의 특징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던 인간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손자병법이라는 지극히 동양적인 틀을 통해 지극히 서구적인 백년전쟁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아직 손자병법이 소개되기 전의 중세유럽의 전쟁에서 손자병법의 흔적을 찾는 것을 통해 어떤 경쟁에서의 보편적인 진리가 있는 것을 아닐까 찾아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손자병법을  일일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어렵운점이 있어 사례 공부를 통해 나의 손자병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이번에 찾아본 손자병법의 구절은 다음이다. 

따라서 용병이란 적을 기만함으로써 성립하고 이로움을 보여줌으로써 적을 움직이며 [병력을] 분산하거나 집중시켜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병력의 기동이]빠르기가 광풍과 같고, 그 고요함은 숲속과 같으며, [적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이 불과 같고, 미동하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알기 어려움이 어둠에 있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것이 천둥과 벼락이 치는 것과 같다. 

손자병법 (김원중 옮김) P.196  위에서 부터 여섯번째줄

 흔히들 풍림화산(風林火山)으로 요약되는 손자병법의 구절이다. 손무의 추상적인 비유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끄는 부대가 광풍같아 지는지 또 언제 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지 사례에 대한 설명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문장에서 주는 느낌만으로 군대란 그래야 하겠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프랑스의 왕 샤를 5세에게서 이 풍림화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무능했던 선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면서 엉망이었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을 대비하면서 수많은 칙령을 통해 그동안 없었던 상시병력을 만들었고 전쟁자금의 마련을 위해 꾸준히 칙령을 내려 세입을 늘려갔다. 부대를 개편하여 조직화 하고 세는 군자금이 없도록 정비하였다. 이 수많은 일을 하면서도 전장에 한번도 나가지 않고 전투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저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준비 했다. 

 그의 전투는 철저하게 게릴라전의 형태를 띄었다고 한다. 영국군에게 전면전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자기 나라 군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내린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책에서는 파비우스 전술이라고 지연전술이었다고 한다. 현대전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을 많이 보이고 있다. 전면전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게릴라전, 유격전 등등으로 불리우는 전술로 보급을 차단하고 적이 방심한 틈을 타 지속적으로 약점만 공격하는 전술이다. 기사도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정신적인 기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술을 택한 샤를 6세는 자신이 선택한 베르트랑 뒤게슬랭으로 대표 되는 용병에게 병력의 운용을 맡겼다. 

 샤를 5세의 철저함은 보르도에 머무르고 있던 흑태자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장면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이 시점에서 샤를은 영국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 장왕을 사로잡았고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프랑스에게 있어서는 공포와도 같은 사람에게 파리의 궁정앞으로 벌을 받으러 오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를 보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쾌 하기도 하지만 그 밑에 깔린 샤를의 자부심이 옅보인다. 

 이후 잉글랜드는 아베벨과 퐁티외 백작령을 점령했다. 그 이후 주변의 영지를 매수하고 파비우스 전술로 끊임없어 확보해 나갔다. 샤를은 파리주변의 마을이 불타오르는 연기를 보면서도 병사들이 전투에 나서는 것을 금지 했다고 한다. 지연전술만 펼친 것이 아니라 잉글랜드에게 저항하는 프랑스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뇌물로 매수한 성에게는 약속을 지켰으며 싸워야 할 적을 잉글랜드로 만드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 것이다.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프랑스내 이런 기류를 만들어 내는데는 성공했다. 잉글랜드에 저항하는 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기류를 바탕으로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내었다. 

 샤를 5세의 업적들을 짧게나마 접하면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국왕이라는 지위를 통해 수많은 책과 정보를 습득하여 그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환경적인 영향이 있기도 했지만 환경만으로 그의 업적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개인적인 역량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강성했던 잉글랜드를 그렇게 까지 몰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몸이 허약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전쟁이라는 인간의 극한의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된다. 

 많은 책과 생각의 시간으로 얻은 지혜를 현실에 적용했던 샤를 5세에게 

 프랑스란 무엇이었을까?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거두어 들인 잔인한 세금들은 프랑스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전쟁만큼이나 괴롭혔을 것이다. 그 만큼 백성들의 저항도 거셌다. 그리고 주류인 기사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그의 전투 방식에 있어서도 내부적인 저항이 컸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 보다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왕의 입장을 그 자리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의 전투에서 나는 풍림화산의 흔적을 옅본다. 적과 나를 냉정하게 비교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펼치고 움직일때와 움직이지 않을때를 스스로 선택하여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백년전쟁에서 가장 배울 것이 많은 장면이다. 

 

2018/07/20 - [하루 책읽기/하루 인문학] - 백년전쟁 1337~1453

2018/08/10 - [하루 책읽기/하루 인문학] - 백년전쟁 1337~1453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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