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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백년전쟁 1337~1453 (두번째)

by jisungStory 201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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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1337~1453

  백년전쟁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것을 다시 글로 옮기려고 하니 부족한 필력에 어려움이 있었다. 손자병법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사례들이 무궁무진하게 많고 그 하나의 사건도 관점에 따라 또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들이라 함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책 전체의 내용을 소재로 쓰기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초반에 있었던 크래시 전투 하나만을 주제로 해보고자 한다. 이 크래시 전투에서 내가 뽑아 본 손자병법의 문장은 다음이다.

따라서 승리를 아는 데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싸워야 할 때를 아는것과 싸워서는 안 될 때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둘째. 병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용병법을 아는 자는 승리한다. 

셋째. 위(장수)와 아래(병사)가 한마음이 되면 승리한다. 

넷째. 준비하고 있으면서 준비하지 못한 적을 기다리는 자는 승리한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조종하려고 들지 않으면 승리한다.

-손자병법(김원중 옮김) p107 모공편 승리로 가는 다섯 가지 길

 

  첫째. 싸워야 할 떄를 아는 것과 싸워서는 안 될 때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에드워드 국왕은 교황의 중재로 기옌공국의 영토의 독립을 확보 할 수 있다면 전쟁을 치르지 않을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가 이를 거부 함으로서 전쟁은 불가피해졌고 그 동안 꾸준히 해왔던 전쟁의 준비를 실행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는 지점에 있어서도 잉글랜드 국왕은 침략하는 입장에서 능동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상륙지점에 대해서도 프랑스 인들은 오판을 하게 된다. 프랑스 인들은 플랑드르 지방에 상륙 할 것으로 예상 했지만 잉글랜드 국왕은 노르망디 지역에 상륙을 했고 잔혹한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프랑스 인들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전투 방식인 초토화 전술을 통해 심리적인 우위도 점하게 된다. 

둘쨰. 병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용병법을 아는 자가 승리한다. 

 잉글랜드는 수적으로 절대적인 약세였다. 사료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잉글랜드 군은 약 1만 1,000명 정도 였다고 한다. 그에 반헤 프랑스 군은 중기병 2만을 비롯해 최소한 3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세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에드워드는 지형적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서기들의 계곡(Valley of the Clerks)' 에 위치를 잡고 메강의 보호를 받으며, 클레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즉 자연 지형의 보호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곳에 병력을 배치 했다. 그리고 경사진 초지로 궁수들이 활을 쏘는데 유리한 지형이었다. 이런 지형적인 우세를 기반으로 병력의 약세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셋째. 위(장수)와 아래(병사)가 한마음이 되면 승리한다. 

 에드워드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직접 부하들 사이로 가서 하나 하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군의 최고 지휘관이 일선 병사들과 직접 독려하는 일은 현대의 군대에도 잘 없는 일이다. 특히 전쟁의 준비단계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여유를 갖는 것은 사기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장면에 대한 서술만으로도 당시 잉글랜드의 병사들이 자신의 총 지휘관인 에드워드 에게 어떤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었는지 예상 할 수 있다.  

 넷째. 준비 하고 있으면서 준비하지 못한 적을 기다리는 자는 승리한다. 

 잉글랜드가 원정을 준비하며 수년간 전쟁을 준비한 반면에 프랑스는 그 앞도적인 위세를 갖고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는 조직과 조직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 하고 프랑스의 기사들은 나아감과 물러섬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방에서 멈추려고 애썼지만 뒤편의 중기병들이 계속 전진해오고 있어 다시 움직 일수 밖에 없었다." (백년전쟁 p82) 

 이 문장을 통해 당시의 전장 상황을 예상 할 수 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빈틈 없이 빽빽하게 서 있고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 그리고 앞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들려오는 엄청난 비명소리에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멈추려고 하지만 뒤에서 수만명이 등을 떠밀고 있어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통제해주는 지휘관 조차 없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프랑스 군은 전투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영국군의 주 무기인 장궁에 대한 준비도 없었다. 기사의 돌격만이 거의 유일한 전술이었다. 프랑스는 원거리 무기에 대해 천시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 운용하는 원거리 공격 부대가 없어 제노바에서 용병을 썼다는 장면 만 보더라도 그들의 생각이 어떠 했는지 읽을 수 있다. 장전 속도가 느리고 사거리가 짧은 석궁은 잘 훈련된 장궁병에게 제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조종하려 들지 않으면 승리한다. 

 일단 장수가 군주였다. 왕이 직접 참여한 전투 였고 그 전투에는 왕세자도 함께 하고 있었다. 진군하는 동안 함께 했고 위에서 언급 했듯이 크래시 전투 전에는 직접 병사들을 독려 하는 모습도 기록 되어 있다. 그리고 전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승리가 확실시 되더라도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든지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도 파리로 직접 진군하지 않는 장면에서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적어도 장수 위에 또다른 명령권자가 있어 흔들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통해서 이 전투를 들여다 보았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과정이었지만 손자 병법에 대해 다시 공부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그리고 역사의 한장면 만이 아니라 이런 손자의 말을 현실에 적용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단순히 전쟁의 승리 라고 하는 국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을 나만의 관점으로 정리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 인것 같다. 

 손자병법은 그 자체로 고전중에 고전으로 아직도 읽히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해에 따라 다르게 해석 할 수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으며 그 해석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의 크기를 넓혀 준다. 고전의 읽기는 이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고전 읽기를 통해 나만의 즐거움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고자 한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백년전쟁의 다른 장면을 두고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해보 싶다. 

 

2018/07/20 - [하루 책읽기/하루 인문학] - 백년전쟁 1337~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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