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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책읽기/인문학

읽다

by jisungStory 201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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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 다


 김영하 작가의 세번째 산문집 '읽다' 이다. 평소에도 소설가가 어떻게 책을 읽지 궁금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 것을 받아 들이고 이해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산문집은 나와 다른 시각으로 책을 읽는 소설가의 독서를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을 읽는 것은 숨바꼭질을 하는 것같다. 유시민 작가의 경우 글의 주제가 명확하게 들어난다. 아니 명확하다 못해 알려주신다. "이 글의 주제는 이거야!"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김영하 작가의 글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어떤 뜻일거라는 잔상은 남아있지만 그 이야기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집어내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라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이야기가 묘하게 섞여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묘한 구조물 속에서 해메는 듯한 그낌을 주는 재미있는 글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에 도달해 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고민하면 읽어 보는 것도 재미 있었다.


 책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는데 읽다 보면 점점 고전을 찾아 읽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도 아마 비슷한 과정을 거치셨던것 같다. '읽다'라는 산문집의 첫 장은 서양 고전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꿰어 이야기 해주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 '오이디푸스왕', '돈키호테' 까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유산과도 같은 고전은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훌륭한 고전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요약되어 쉽게 쓰여진 버전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원전을 전체 번역한 것은 성년이 되어서도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 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이 고전들은 살아 있는 인간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을 통과한 작품인 만큼 그 서사의 힘을 읽어 보지 않고 가늠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산 고전은 '손자병법'이었다. 당시 나는 학군단에서 후보생으로 군사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군사교범에 항상 인용되는 것이 이 '손자병법'이다. 그런데 그 교범의 문장들이 너무 재미 없고 암기만을 강조 하기 때문에 성적이 항상 좋지 않았다. 나는 좀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런 생각을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그런 책들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도 풀겸 서점 탐방을 하던중 '손자병법'을 뽑아 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때의 감정에 이끌려 부족한 사정에도 불구 하고 사들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동 구매에 가까운 지름이었는데 그 보다 값진 충동구매는 내 삶에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설명해주는 '손자병법'은 지루하고 재미 없었는데 내가 읽는 '손자병법'은 달랐다. 문장이 길지도 않고 간결하다. 그리고 설명도 없다. 문장에 제시된 병법을 그대로 내가 이해해서 내 생각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만큼 신나는 경험도 없었던 것 같다. 뭔가 자유로운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산 책에서도 자잘한 설명들이 붙어 있긴 했다. 이거는 이런 의미 인것 같고 저거는 저런 의미 인것 같다 라는 역자의 말들... 하지만 그것 역시 역자의 생각이지 손무에게 물어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있을리가 없다. 손무 선생님도 자신의 글로서 후세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의 생각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적용하라" 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무장 다운 단단한 문장들은 읽으면서 시원하다고 느꼈다.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고전만 읽었다. '논어', '한비자', '장자' 등등...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이라 동양고전의 번역서들이 다양하게 많이 나와있다. 지금은 원서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에 한자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다. 이 모든 고전들의 한문장 한문장이 허투루 흘려 보낼 것 하나 없는 완전한 작품이라는 것은 수세기 동안 많은 학자들이 검증해왔다. 고전에 대한 평가는 이런 학자의 권위에 기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읽어 보고 재미 없으면 읽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이런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삶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사건들을 통해 사람은 배우게 되고 그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그 때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의 재료가 필요할때 고전들이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대한 답은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한다. 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해온 질문들을 정리 해 놓은 것이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는 고대 고전에서 한걸음 더 들어간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보바리 부인', '죄와 벌'등 19세기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그들을 묘사 하는 작가의 문장을 통해 나같은 일반인들이 쉽게 놓치고 지나가는 소설 표현의 재미를 알려준다. 작가들의 문장들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의미들을 김영하 작가의 시선에서 해설 해준다. 그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일어나는 나의 내면에서의 활동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권의 책을 읽었지만 네, 다섯권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아마도 산문집 안에서 예를 든 다양한 소설에 작가의 생각이 더해지면서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해서이다. 보이기 시작하니까 나의 생각까지 더해져서 짧은 이야기 하나를 두고 세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와 , 그 소설을 해설하는 김영하 작가와 ,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나이다. 책을 읽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은 독서는 작가와의 대화라고 한다. 대화는 두 사람 이상이 말을 주고 받는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미 쓰여져 있는 책을 읽고 어떻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직접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것을 의미 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비록 얼굴을 맞대고 대화 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내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이 산문집에서 한문장을 고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소설가의 산문집인 만큼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 설계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다. 그 미로를 헤매는 과정에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만나게 되고 또 그 생각은 내안에서 파생되어 다른 이야기로 발전한다. 그런 과정이 이 책안에서 수 없이 반복된다. 그 것이 이 산문집을 빛나게 하는 이유이다. 여러가지 빛나는 문장들이 있지만 내가 고른 한문장은 다음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읽는 것은 바로 이 광대한 책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입니다.'

-김영하 산문집 '읽다' p208 페이지 16번째줄

 

 

 책을 읽는 행동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한 문장들도 이 산문집 안에 많이 있다. 가끔 책읽기가 지루해 멀어질때면 이 산문집을 꺼내어 표시했던 문장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곤한다. 그리고 이 안에 소개된 소설들을 읽어봐야지 하며 읽기의 즐거움을 깨우친다. 읽어야될 책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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