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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이야기/정리하기

모임 버리기

by jisungStory 2018.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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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버리기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이다.


 단독 생활을 지향하는 동물들도 있지만 사람은 집단 생활을 통해서 생존해 왔고 그 안에서 발전을 이룩해왔다. 나 또한 여러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사회적 감각을 길러 왔다. 가작 원시적인 모임인 가족 부터 시작해서 교육기관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까지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1700명 정도되지 않을까 한다.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이다. 그리고 저번에 핸드폰 번호를 정리하면서 저장된 번호를 보니 560명 정도는 한두번 정도 연락했거나 하고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으로 추론 해보면 일단 만나고 번호까지 주고 받을 정도로 대화를 해본 사람은 30%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족을 제외하고 내가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은 백명을 채 넘지 않는다. 물론 직장생활이라는 어쩔 수 없는 강제가 들어가는 인간관계를 포함해도 채 백오십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수십억의 인구가 있다는 통계 수치가 있고 우리나라 인구만 5천만이 넘는다고 하지만 내 삶에 필요한 만남은 백여명이 전부 이다. 그 이상의 사람은 더 만나더라도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되거나 모르는 것만 못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학벌'과 '인맥'이다. 유명대학과 아는사람 성공을 바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 두가지 요소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성공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처음 부터 학벌을 갖지 못한 무능력한 학생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것은 한국 사회에서 낙인 비슷한 효과로 평생을 따라다닌다. 애써 신경쓰려 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도 일년에 한두번씩은 그 학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다른 요소인 '인맥'이라는 개념에 집중하기로 했다. 직장의 소모임 뿐만 아니라 직장선배의 술자리 관련된 사모임에서 불러 준다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지역 소모임에도 시간이 허용하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해 모임에 나갔다. 입사이후 그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는 듯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에서의 내 나름대로의 노력은 진급 실패로 이어졌다.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다들 의외라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평가자들 마저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투로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될거라고 생각했는지 시스템의 문제를 삼았다. 만약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면 일년 후배가 나보다 먼저 진급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냥 귀를 닫고 넘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의 직장에서의 '인맥'쌓기는 실패한것이다. 


 반면에 사회모임에서는 달랐다.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아는 친구들이 되어버린 형과 동생들이지만 어색하게 만났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남을 이어나갔다. 스키장 부터 일본 여행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하게 만나서 놀았던것 같다. 물론 그 중에는 다양한 이유로 더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도 생겼고 뒤는게 함께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이제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해진 사회 모임은 특별한 구심점이 없이도 지금까지 편하게 연락하는 사람들도 지내고 있다. 지금의 아내도 이 사회 모임의 동생이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고마운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인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부터 발생한 것일까? 


 나의 지난 노력을 돌이켜 본다면 회사에서의 모임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들이면 들였지 사회모임에 나가기 위해 애를 쓴적은 한번도 없다. 시간이 안되면 안나가기도 하고 귀찮아서 안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친해지고 끈끈해진 것은 사회모임이었다. 이 주제를 통해 글을 쓰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었다. 


 결론은 마음이 편해서 였다. 부담없이 만나다 보니 나의 원래 모습을 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친구들도 나의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를 나의 모습 그대로 이해해 주었다. 반면에 직장의 모임은 달랐다. 어느 모임에 가나 직장 선배가 있고 그 위주로 술자리가 이어지게 되어있다. 언제나 직장선배의 후배에게 바라는 명연설이 이어지고 나는 거기에 맞추어 행동해야 했다. 그 각각의 모임의 특성에 따라 나를 끼워 맞추듯이 행동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경직되어 있고 불편해져 있었다. 


 불편한 사람은 그 자리도 불편하게 만든다. 나로 인해 그 선배들은 말은 실컷 했을지 몰라도 불편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은 내가 참석할때 마다 이어졌을 것이고 부정적인 이상은 계속해서 쌓여 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모든 원인은 내가 그 자리를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 그 자리를 앞으로 내가 즐기게 될 가능성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나에게도 좋지 못한 인상이 너무나 많이 쌓여 버려 나도 모르게 그런 자리에서는 불편함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회사직원들 간의 술자리는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을 못한다. 게으르다는 평가가 나오더라도 어쩔 수 없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사람들고 만나는것은 나를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며 시간 낭비적이다. 


 모임을 정리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럼 앞으로 나는 사람들을 만날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만나야 할 것인가 ? 어떤 모임에 나가야 할 것인가? 


여러가지 기준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나의 최우선 기준은 한가지만 세우기로 했다. 


 그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그 모임에 더이상 나가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내 인맥형성에 도움이 되고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내가 즐기지 못하는 모임은 점진적으로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일단 기준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나의 이 기준이 모임에 아예 나가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는것은 두려워 할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은 나를 발전시키고 인식의 벽을 허물어 주는 주요한 활동이다. 다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과연 이 모임에서 내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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