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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이야기/정리하기

스피커 버리기

by jisungStory 2018.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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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버리기

 집에는 스피커가 커다란 것이 있다. 컴퓨터를 사용한지 오래되다 보니 잊게 되는데 처음에 컴퓨터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고작해야 삐빅 하는 전자음 정도 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해 두해 지나 사운드카드라는 것이 개발되고 그것이 심지어 컴퓨터에 내장된 채로 나오면서 비로소 컴퓨터는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음악파일이나 동영상 파일들을 구하고 집에서 재생하는 일을 반복했었다. 그러면서  컴퓨터와 관련된 노하우도 쌓이게 되고 점점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군인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장교로 군에 근무하게 되었다. 세상과 그나마 덜 동떨어진 채로 군생활을 하게 되긴 했지만 군인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대부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었고 점점 이 기기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피커의 성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엄청난 크기의 스피커를 저렴한 가격에 많이 출시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꽤 괜찮은 스피커를 저렴한 가격으로 알아 내었다. 하지만 사진으로는 그 제품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 수 가 없어 나는 휴가를 내어 용산으로 직접 가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이가 없기도 하다. 고작 스피커를 사러 휴가까지 내고 용산으로 가는 행동이 좀 어리석지 않나 싶을 정도 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마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성장한 나에게 서울의 전자상가는 마치 꿈의 도시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기에 아마 더 가고 싶었던것 같다. 몇시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겨우 겨우 도착한 용산에서 그 스피커를 파는 곳도 겨우 겨우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용산이 대단히 번화해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스피커 파는 가게들 중에 괜찮은 가격을 제시해준 곳에서 하나 덜렁 구매해서 들고 나왔다. 정작 사는 것은 십분도 안걸렸던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스피커의 크기 였다. 

 스피커가 생각보다 컸다. 왠만한 10권짜리 소설전집 두세개는 붙여놓은 듯한 크기 그리고 무게 기억에 그 때가 유월이었으니까 날씨도 꽤 더웠다. 군인티 안내려고 빡빡 깍은 머리에 뭔가를 이것 저것 걸치고 갔던것 같다. 내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두번 갈아타야 하는 거리 지금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이십대때는 잘도 저지르고 다녔던것 같다. 

 숙소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땀범벅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싱글거리며 스피커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강력한 감정이었다. 그 후로 오랜 기간 그 비좁은 방에 살면서도 그 큰 스피커를 포기하지 못하고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그 스피커는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집 창고에 있다. 사용하지 않지만 버리지 못한게 몇년 째이다. 

 이제는 보내주려고 한다. 그 스피커는 너무 커서 책상위에 올려놓기 부담스럽고 이제는 모니터와 노트북에 꽤 괜찮은 스피커들이 내장되어있어 굳이 스피커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오래되다 보니 작동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스피커에 관한 나의 추억때문이다.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들이 섞여 차마 그 물건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버릴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 추억과 기억을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건을 버린다고 해서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진 않는다. 내 삶에서 이제는 덜어내야 할 부분들을 하나 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의 내 삶에서는 무언가를 더하기 보다 덜어내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나의 핵심 목표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시간을 빼앗기며 살 수는 없다. 

 좀 더 처음의 마음을 다시 다지며 스피커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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