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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ung's 이야기/정리하기

포장지 버리기

by jisungStory 2018.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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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다. 물건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노동으로 번 돈을 물건을 사는데 사용한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긴 이후로는 나도 엄청난 소비를 해왔다. 내가 좋아 하는 전자제품들 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책까지 이사하기전 내가 살던 방은 내가 샀던 물건들과 그 포장 박스 들로 가득차 있었다. 점점 비좁아 지는 내 방에서도 나는 내가 산 물건들을 보며 좋아 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내 방은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고는 사람 한명 겨우 누울 자리 외에는 남지 않았다. 방문도 겨우 열리는 상황까지 갔다. 그래도 정리하지 않고 그렇게 몇년을 살았다. 그러다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왔다. 

 도저히 짐을 다 옮길 수가 없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 한짐이었다. 사계절 입어야 할 옷부터 각종 세면도구들 그리고 컴퓨터와 몇권 되지 않아도 엄청난 짐이되는 책들... ... 도저히 나 혼자서는 옮길수 없는 짐이었다. 결국 다 옮기지 못하고 일부만 옮기고 몇번에 걸쳐 짐을 옮겼다. 그때 제일 쓸모 없었던 것들이 포장 박스 들이었다. 물건을 사고 나서 그 포장 박스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살 때마다 버리지 않고 모아 뒀었는데 짐을 다시 옮길때 다시 쓰지도 않고 다시 가져가 봐야 또 짐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냥 짐이 되기 위한 짐이었다. 그래도 사람의 습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처음 이사한 집에서도 그 포장 박스들을 모아 뒀었다.

 최근 며칠 포장 박스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요즘 아파트들은 종이를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의 경우는 수요일인데 수요일 저녁 마다 버릴 수 있는 만큼 포장 박스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양이었다. 한번에 버릴 수가 없어 꾹꾹 눌러 압축시킨 종이박스들을 낑낑대며 세번이나 오고가며 버렸다. 버리고 나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공간을 확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적 공허함에서 좀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빈 박스들을 벽 한켠에 쌓아두고 자기만족을 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물건들을 살 수 있다. 나도 능력있는 사람이다. 그 물건의 진정한 가치는 뒤로 하고 그저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만족감만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거다. 내가 일하고 돈을 버는 의미를 그런 소비를 통한 소유로만 의미를 부여하고 그 부여된 의미를 통해 나의 스트레스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소비로만 풀 수는 없다.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받는데 살수 있는 물건들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쌓아놓을 공간도 한계가 있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병에 맞는 약을 쓰는게 아니라 통증을 잊게 만드는 진통제만 계속 먹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 많은 박스들을 버리면서 그동안 내가 받은 스트레스가 이만큼이나 되는 구나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안받고 살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부 세계와 끊임 없이 부딛혀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스트레스라는 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나만의 다른 약이 필요하다. 소비를 통한 자기 위로가 아닌 다른 활동을 통한 해소가 필요하다. 그 길을 찾아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이 '정리하기' 작업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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